2011. 겨울 편지 (1) 부끄러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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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겨울 편지 (1) 부끄러운 아빠: 2011.12.07 13:07 입력

김정태 munhwausa@gmail.com

<table width="7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
<tbody>
<tr>
<td><img alt="2011. 겨울 편지 (1) 부끄러운 아빠" width="700" align="absMiddle" src="http://munhwai.com/PEG/13232307342161.jpg"></td></tr></tbody></table>
 
옛날 아주 오랜 옛날
그곳에 동물원이 있었을 때
서울교육청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나눠준 백지에 크레용칠을 했더니
무슨 상장이 학교로 날아든 적이 있다
 
잘했다
 
교장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고
학교 오가는 길 곁 무 밭에서
학교 선배들과 무를 뽑아 먹는 재미에
학교 오가는 논의 벼에서 널뛰기를 하는
메뚜기를 잡아 벼 꼬챙이에 끼어 불에 구워 먹는 재미에 팔려
무려 일주일 간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을 때
집까지 찾아오신느 바람에 그날 밤 아버지한테 
내가 죽도록 얻어 터지게 만들었던
가을 단감보다 더 예쁜 그 여자 담임 선생님의 입가에
입을 갖다 대기만 해도 입가에 단감물처럼 묻어 있던 웃음
그때
내 꿈은 화가
 
옛날 아주 오랜 옛날
그곳에 아직도 동물원이 있었을 때
서울시 소재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한 장 두 장 나누어 주던 빨간 네모칸
한장 두 장 채우고 왔더니
무슨 상장 하나가 가을잎 떨어지듯 학교에 도착했다
 
잘했다
 
월요일 조회 때 운동장 가득 모인 학생들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한마디 하신 후 나를 연단으로 오게 했다
지난 주 교무실에서 이미 본 그 상장을 받고 내려올 때
실향민이었던 문예반 선생님의 머리없는 이마 위에 내린
햇살이 번쩍 거리는 바람에 눈이 부셔서 웃었더니
당신도 따라 웃었다
그때
내 꿈은 선생님
 
올 10월에 우연히 그 동물원이 있던 그곳을 지나면서
옛날
아주
오랜 옛날을 기억했다
 
언제였을까?
저 곳에 동물원이 사라지고
사라진 역사가 제 자리를 찾은 때가
언제였을까?
 
동물원이 사라졌을 때
내 꿈도 사라진 건 아닐까
 
시애틀 타코마가 한인회장 문제로 참 시끄럽다
한국의 정치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유언비어에 인신공격이 하늘을 찌른다
 
언제부터 저렇게 한인회장 자리가 인기였을까?
 
투계 그래
닭장 속에서 닭들이 깃털을 날려가며 벌이는
투계장 鬪鷄場 같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불현듯 반성했다
 
그러면 너는 뭐냐?
 
화가 선생 작가
어느 것 한가지 제대로 이룬 것 있니?
 
아,
환청일지 모르지만 그 환청이 곧 현실의 칼바람이 되어
신새벽 담배 한대 피우는 내 가슴팍을 향해서 제대로 찌르는 것 아닌가!
 
아, 사랑하는 자식들아
아빠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한민국 대통령과 다른 사람들의 멋진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어주었지만 정녕 아빠는 그 속에 없구나
 
다른 아빠들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시애틀협의회 자문위원이 되어
대통령 이름이 금박으로 박힌 그 위촉장을 집안 거실 눈에 띠는 곳에 걸어놓고
목에 힘을 주는데 아빠의 거실에는 그런 것 하나 없고
 
다른 아빠들은 어디 어디 협의회나 협회에서 받은
빛나는 패가 벽에 즐비하건만 아빠는 패는 커녕 한인회 임원장도 하나 없구나
 
내 사랑하는 자식들아
너희들 앞에 참 부끄럽다
 
궁색한 변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그곳에 있던 동물원이 사라지면서
아빠의 꿈도 사라졌기 때문이다